소마 탄광 사고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큰 땅덩이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부르지만 엄연히 분리된 대륙으로 통용된다. 대개 우랄 산맥과 지중해를 기준으로 해서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데 이에 따르면 조금 애매해지는 나라가 있다. 바로 터키다. 터키는 보스포러스 해협이라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 쪽에 99퍼센트의 영토를 두고 있으며 유럽 쪽으로는 이스탄불이라는 오래된 도시를 지닌 나라다. 아시아 국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으나 터키는 스스로를 유럽 국가로 지칭하며 관광 홍보 문서에서도 “아시아에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은근히 또는 대놓고 터키를 유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EU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도 얻지 못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근본적으로 무슬림 국가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거부감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터키의 EU 가입을 거절하는 표면적 이유에는 터키의 인권 문제도 걸려 있다. 소수민족 쿠르드 족에 대한 정치적 박해, 여성 인권 등에 대해 서구의 보편적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이다. 기실 유럽 사회의 무슬림 차별 등도 심각한 판에 인권 문제를 터키에게만 들이미는 것은 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해 봄, 터키의 현실을 들여다볼 만한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소마 탄광 폭발 사고다.
2014년 5월 13일 터키에서 가장 큰 석탄 생산 기업인 소마 쾨뮈르 이쉴렛멜레리 A.Ş. 소유 탄광에서 불길이 솟았다. 이 화재는 전기공급장치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 폭발로 갱도가 무너지면서 수백 명의 사람이 지하에 파묻혔다. 하필이면 폭발이 일어난 시간은 광부들의 교대 시간이었고 교체 인력과 근무 인력이 모두 지하에 있을 때였다. 순식간에 780 명 이상의 광부들이 땅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이 사고는 ‘유럽 국가’ 터키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기 시작했다.
구조대가 총출동하고 가족들이 몰려와 울부짖는 가운데 첫날부터 시신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불과 15살의 소년 광부 케말 이을디즈가 있었다. (경향신문 국제부 블로그 중) 터키 법상으로 미성년자를 광부로 채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당국도 “열 다섯 살짜리 광부는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으나 문제는 법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소년 광부가 탄광 안에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하청업체들이 제대로 된 신원 조회를 하지도 않고, 싼 노동력을 무분별하게 투입했던 것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법이 무시된 것이다. 터키 정부는 탄광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이 와중에서 마땅히 국가가 챙겨야 할 노동자들의 산업안전과 생명 보호의 의무까지 도매급으로 넘겨 버렸던 것이다. 실제로 소마 탄광 소유주는 “우리는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노동자들을 고용한 톤 당 생산 가격을 130달러에서 24달러로 낮췄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었다. (위 기사) 그 비용의 ‘다이어트’가 과연 필요없는 군살이었는지 아니면 노동자들의 안전이라는 뼈를 덜어낸 것인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출처: 위키백과
앤드류 가드너(Andrew Gardner) 국제앰네스티 터키조사관은 분노에 차서 이렇게 증언한다.
“이번 사고는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이었다. 오래 전부터 터키에서 광산 사망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점은 광부들의 안전에 대해 섬뜩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터키 의회가 심각한 산재사고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정부가 거부한 것은 충격적일 뿐이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인권뉴스, 2014.5.16)
즉 사고는 결코 갑작스레 난 것이 아니었다. 1941년 이후 터키에서 일어난 광산 사고로 죽어간 노동자만 3천명이 넘고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안전보다는 채산성에 관심이 있었고, 소마 탄광에서 드러났듯 안전 장치 하나 제대로 구비하지 않은 탄광에 안전 점검 ‘우수’ 판정을 남발하고 있었다. 5,000건의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있었던 소마 탄광을 두고 여당 의원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탄광”이라고 떠벌이고 있었으니 사고는 과히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고 하겠다.
출처:터키한인회 홈페이지
이것만 해도 터키 시민들의 분노를 살 일이었으나 수습 과정에서 보여 준 정부측의 행태는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전 터키 국민들을 격앙케 했다. 정부의 수장이라 할 에르도안 총리는 난데없는 영국의 탄광 사례를 들며 "이런 사고는 일어나곤 하는 일"이라는 표현을 했다. 즉 사고에 대한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에 앞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치부한 것이다. 결국 그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사고, 항공 사고, 교통 사고, 해상 사고, 각종 산업안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고 만다. 한 나라의 정부 수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언동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현장을 방문했을 때 분노한 시위대에 몰려 물러서는 과정에서 시민을 폭행했고 총리 보좌관은 항의하는 유족의 낭심을 걷어차는 모습이 촬영돼 물의를 빚었다. 이에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 그 외 터키 각지에서 항의 시위가 속출했으며 터키 4대 노조는 비용 절감이 결국 노동자들의 생명을 잡아먹었다며 파업을 선언했다.
정부의 대응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초반에는 매몰된 광부의 인원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앞서 언급한 미성년자 광부의 경우에서 보듯 인적 사항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망자 통계도 계속 계속 예상을 넘어서는 가운데 결국 사건 발생 5일만인 5월 17일 터키 에너지부 이을드즈 장관은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갱 안에 구출할 광부는 이제 없다"며 사망자는 모두 3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탈출자 363명, 구조자 및 부상자는 122명. 그러나 사람들은 그 수치를 믿지 못했다. 노조에서는 3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아직 광부들이 갱 안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갱도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들이붓는 잿더미들에 생존자들이 죽어갈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은 요지부동이었다. 삼풍백화점 참사 때 보름이 넘도록 버틴 생존자가 있었고 기타 광산 사고에서도 1주일은 충분히 생존한 사례가 있다고 할 때 터키 정부의 구조 종료 선언은 지나치게 빨랐고 잔인했다. 그리고 아직도 정확한 사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안전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대개 두 가지다. 안전 자체에 대한 주의 소홀과 방심, 그리고 안전을 지키는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이익에 대한 유혹, 즉 사람의 생명보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경제 논리가 그것이다. 터키의 소마 탄광 폭발사고는 그 두 가지가 극명하게 얽려서 드러난 사고였다. 더구나 터키 정부가 보여 준 사태 수습 과정은 교만하고 비인간적이었으며 무책임했다. 정부는 사고에 대해 정부에 항의하는 이들을 반정부적 불순분자로 몰았고 경찰력을 투입해 진압했다. 그들은 “일어날 수 있는 탄광사고”로 정부를 비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안전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구조 과정이 참담했으며 정부의 수습 태도 또한 0점이었던 소마 탄광 사고. 이 사고가 낯설지 않은 것은 터키에서만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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