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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장채근 야구코치 프로필 선동열

 

 

 

광주상고-성균관대 체육교육학과를 다녔으며 특히 대학시절 배터리를 이룬 동기 한희민과는 둘도 없는 절친. 대학 졸업후에 1986년 신인지명 1차 9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당시 주전 안방마님이던 김무종의 존재감이 워낙 막강했던지라 잘해야 1군 백업이었고 주로 2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찌어찌 백업 포수로 출전했다 해도 타석에선 대타를 써버리자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엔 경기 후 술에 잔뜩 취해서는 숙소의 김응룡 감독 방에 들어가서 "나에게도 한번 기회를 달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나, 김응룡에게 찍소리 못하고 제압당한 적도 있었다(...)

 

카더라에 의하면 당시 흉기를 들고 김응용 감독을 찾아갔다고 했지만 장채근 본인이 "주전 기용 요청을 위해 김응용 감독을 찾아간 것은 사실이나 흉기를 소지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https://www.youtube.com/watch?v=bRfEU0mame0 6분부터 참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김응룡은 장채근의 배짱을 높이 사게 되었고 그에게 주전 도약의 기회를 주기에 이르렀다.

 

홍익대의 황금기를 이끌고 연령대 대표팀을 맡으며 유니버시아드 3위 세계선수권 3위를 이끈 명장
은퇴 후 장채근은 1996~2004년 해태와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 코치[7], 2004~2005년 KIA 수석 코치, 2007년 KIA 육성군 코치를 역임하였으며, 2008년 이광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우리 히어로즈 1군 배터리 코치를 지냈으나[8][9] 1년만에 계약이 해지되며 현장을 떠났다.

 

 

포수 리드에서 볼배합 측면에서는 당대 1위라 할 수 있는 팀 동료 김무종에게 우위를 점한 것은 아니었으며, 수비력도 블로킹 능력 (+ 트래쉬 토크) [12]을 제외하면 동 시대의 경쟁자들보다 월등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팀 포수들이 갖기 어려운 강점 2가지가 있었으니,

첫째, 체격.
워낙 체구가 큰 덕분에 장채근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으면 백스톱이 꽉 찬 듯한 인상이 들어 투수들이 마음놓고(?)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딜 던져도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던 것.

둘째, 소통.
투수가 최대한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다독이는데 능하였고, 마운드에서 쫄아있는 투수를 특유의 걸직한 입담으로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 이렇게 하면 투수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데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벤치 및 일상에서의 팀 단합에도 큰 도움이 된다.

 

  • 해태 입단 초기 동계훈련 때 김응룡 감독이 체중을 물었는데, 자신의 진짜 체중은 95kg 였지만 5kg를 줄여 "90kg입니다" 라고 답했다. 이에 김응룡은 "한달 줄테니 10kg 빼라"는 지시를 내려 장채근은 한달 동안 죽어라 고생한 끝에 간신히 5kg를 줄였다. 비록 10kg엔 미치지 못했지만 한달 만에 5kg를 줄인 게 자신으로서도 뿌듯했던 장채근은 김응룡이 다시 체중을 묻자 "옛! 90kg입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러자 김응룡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야 임마, 하나도 안 줄였잖아!" 라고 불호령(...). 장채근은 순간 자신이 애초에 체중을 속였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 낮은 타율에 비해 홈런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88~92년 사이에는 타자로서도 괜찮았고 특히 커리어 하이인 92년엔 이만수 다음가는 포수였다.

  • 우람한 체구에 비해 의외로 다리가 꽤 가는 편이다.

  • 외모만 보면 무지막지해 보이지만 생각외로 목소리가 고음에 가는톤이라 갭이 상당히 많다.